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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덕수궁 석조전과 한옥의 만남

덕수궁(德壽宮)은 조선 후기에서 대한제국(1897-1910)으로 이어지는 격변의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궁궐이다. 본래 조선의 별궁이었던 덕수궁은 임진왜란(1592) 이후 선조(宣祖, 재위 1567-1608)가 머물면서 정식 궁궐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대한제국 시기에는 고종 황제(高宗, 재위 1863~1907)가 머물며 서양식 근대 건축을 도입하는 등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건축 양상을 보였다.

 

덕수궁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석조전(石造殿) 이다. 석조전은 1910년에 완공된 서양식 궁전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기반으로 한 고전주의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한편, 덕수궁 내에는 정관헌(靜觀軒), 함녕전(咸寧殿)과 같은 전통 한옥 건축물도 남아 있어, 궁궐 내에서 서양식 건축과 전통 한옥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덕수궁 내에서 석조전과 한옥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고찰하고, 두 건축 양식이 가지는 역사적·문화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대한제국 시기 건축이 어떻게 전통과 근대의 융합을 시도했는지를 심층적으로 탐구할 것이다.


1. 덕수궁의 역사적 변천과 건축적 특징

1.1 덕수궁의 기원과 조선 시대의 변화

덕수궁은 본래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 1454-1488)의 사저(私邸)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선조가 이곳에서 머물면서 ‘정릉동 행궁(貞陵洞行宮)’이라 불리며 궁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대에 ‘경운궁(慶運宮)’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게 되며 궁궐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에 덕수궁은 점차 그 중요성이 낮아졌으나,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다시 주목받으며 대대적인 개축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덕수궁에는 기존의 전통 한옥뿐만 아니라, 서양식 건축물이 대거 도입되는 변화가 이루어졌다.

1.2 대한제국 시기의 덕수궁 변화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 황제는 근대 국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적·문화적 상징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덕수궁은 전통적인 궁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서구식 건축 기법을 도입하여 새로운 궁궐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건설된 대표적인 서양식 건물은 석조전(石造殿) 이며, 이외에도 정관헌, 중명전(重明殿) 등이 서양식 건축 양식을 반영한 건축물로 지어졌다. 그러나 동시에 전통적인 한옥 건축물인 함녕전과 준명당(浚明堂) 등이 보존되어, 덕수궁은 서양식 궁전과 한옥이 공존하는 독특한 궁궐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덕수궁 석조전과 한옥의 만남

2. 석조전의 건축적 특징과 의미

2.1 석조전의 설계와 건축 양식

석조전은 덕수궁에서 가장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물로, 1910년에 완공된 한국 최초의 서양식 궁전 이다. 설계는 영국인 건축가 J.R.하딩(J.R. Harding) 이 담당하였으며,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을 기반으로 한 신고전주의 양식을 채택하였다.

  • 건물 구조: 석조전은 정면 3층, 후면 2층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대리석과 화강암을 사용하여 건축되었다.
  • 지붕 양식: 평지붕(Flat Roof) 구조를 채택하여 전통 한옥의 팔작지붕과 대비된다.
  • 기둥과 장식: 코린트 양식(Corinthian Order)의 원형 기둥과 아치형 창문, 대형 샹들리에 등 서양식 건축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2.2 석조전의 기능과 역사적 의미

석조전은 본래 황제의 거처 및 외국 사절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사용될 예정이었으나,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완공 후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이후에는 일제강점기 동안 박물관, 도서관 등으로 활용되었으며, 현재는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석조전의 건축적 의미는 단순한 서양식 궁전 도입을 넘어, 대한제국이 서구 문물을 수용하며 근대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노력을 상징하는 건축물 이라는 점에 있다.


3. 한옥 건축과의 조화 – 함녕전과 정관헌

3.1 함녕전의 건축적 특징

함녕전(咸寧殿)은 덕수궁 내에서 가장 전통적인 한옥 양식을 유지한 건물로, 고종 황제가 실제로 거처하던 공간이다.

  • 구조: 정면 7칸, 측면 3칸의 단층 건물로, 전형적인 조선 후기 궁궐 양식을 따른다.
  • 지붕 양식: 팔작지붕을 채택하여 전통 궁궐 건축의 특징을 유지하였다.
  • 온돌 구조: 내부에는 전통적인 온돌 난방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어, 한국적인 주거 양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3.2 정관헌 – 서양식과 한옥의 접목

정관헌(靜觀軒)은 덕수궁 내에서 서양식과 한옥이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이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기던 공간으로도 알려진 정관헌은, 서양식 건축 구조를 따르면서도 한옥의 요소를 가미한 건물이다.

  • 기둥과 외관: 서양식 석조 기둥을 사용하였으나, 지붕은 한국 전통 한옥 형태를 유지하였다.
  • 내부 공간: 내부는 개방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창문과 문양 장식에는 전통적인 한국적 요소가 가미되었다.

이처럼 정관헌은 서양식과 한옥 양식이 융합된 대표적인 건축물 로, 덕수궁이 전통과 근대가 공존하는 공간임을 잘 보여준다.


결론

덕수궁은 대한제국 시기 전통 한옥과 서양식 건축이 공존하는 독특한 궁궐로 변화하였다. 석조전은 서구식 근대 건축의 상징이자 대한제국의 근대화 의지를 반영한 건축물이며, 함녕전과 정관헌은 전통 궁궐 건축과 서구 문물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이러한 덕수궁의 건축적 변화는 대한제국이 전통과 근대를 조화롭게 융합하려 했던 시도를 상징하며,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덕수궁은 단순한 역사적 유산을 넘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간 으로서 연구와 보존이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