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옥

조선 시대 노비들의 거주 공간 ‘행랑채’의 역할과 생활

조선 시대 노비들의 거주 공간 ‘행랑채’의 역할과 생활

조선 시대 노비들의 거주 공간 ‘행랑채’의 역할과 생활

조선 시대의 한옥은 신분에 따라 공간이 엄격히 구분되었고, 노비(奴婢)의 거주 공간인 ‘행랑채(行廊채)’도 예외가 아니었다.

 

행랑채는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주인의 집을 보호하고, 집안일을 수행하며, 외부와의 연결을 담당하는 다목적 공간이었다. 오늘은 노비들은 어디에서 살았으며, 그들의 생활은 어땠는지 깊이 파고들어 보자.


1. 행랑채(行廊채)란?

📌 행랑채란?

  • 한옥에서 대문 옆 혹은 앞쪽에 위치한 건물로, 주로 노비들이 거주하며 주인의 집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 ‘행랑(行廊)’이라는 말은 대문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 같은 집이라는 뜻이다.

📌 행랑채의 주요 역할

  1. 노비들의 거주 공간
  2.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
  3. 집을 지키는 초소 역할
  4. 창고 및 노동 공간

2. 행랑채의 건축적 특징

1) 위치와 배치

  • 대문 옆에 위치하여 외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출입을 통제.
  • 집안 깊숙한 곳(안채, 사랑채)과 거리를 두고 배치되어 주인과의 공간 분리.
  • 일부 양반가에서는 행랑채가 ‘ㄷ’자나 ‘ㅁ’자 형태로 대문을 감싸도록 배치됨.

2) 건물 구조

  • 기와집이 아니라 초가집(짚이나 억새로 만든 지붕) 형태가 많음.
  • 온돌이 없는 경우도 많았으며, 단순한 구조로 실용성을 강조.
  • 내부 공간은 작은 방과 부엌, 광(창고)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방은 작고 낮았음.

3. 행랑채에서의 노비 생활

📌 행랑채에 거주한 사람들

  1. 살림노비 – 집안일을 하며 주인의 생활을 돕는 노비.
  2. 사령(使令) – 문지기 역할을 하며 출입을 관리하는 하인.
  3. 심부름꾼 노비 – 외부 심부름을 담당.
  4. 머슴과 식솔들 – 일정한 보수를 받고 일하는 머슴도 함께 거주.

📌 노비들의 일상과 역할

시간 일과
새벽 대문 개방, 주인의 기상 준비, 부엌 일 시작
아침 주인의 식사 준비, 아이들 돌봄, 마당 청소
외부 심부름, 시장에서 장보기, 농사일 지원
저녁 저녁 식사 준비, 대문 단속, 주인 가족 뒷바라지
경비 근무, 문단속, 불침번 서기

 

📌 노비들의 고된 생활

  • 노비들은 행랑채에서 생활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못했다.
  • 일부 집에서는 주인의 허락 없이 외출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다.
  • 심부름이나 노동을 하다가 실수하면 체벌을 받는 경우도 흔했다.

📌 행랑채에서 생활한 노비들의 먹거리

  • 양반가의 식사는 매우 풍성했지만, 노비들은 남은 음식(찌꺼기)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 주로 좁쌀밥, 보리밥, 나물, 김치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 양반가에서 잔치가 열리는 날에는 행랑채에도 고기나 특별한 음식이 조금씩 나눠졌다.

4. 행랑채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

📌 1) 신분을 구분하는 공간

  • 노비들은 안채나 사랑채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됨.
  • 행랑채의 위치와 구조는 조선의 신분제가 주거 공간에도 반영되었음을 보여줌.

📌 2) 노비 해방 후 행랑채의 변화

  • 19세기 후반, 노비제가 폐지되면서 행랑채의 역할이 바뀌기 시작함.
  • 일부 양반가에서는 행랑채를 하인들의 거처 대신 창고나 임시 거주 공간으로 활용.
  • 현대에는 한옥 호텔, 게스트하우스 등의 숙박 시설로 개조되기도 함.

📌 3) 현대 한옥에서 사라진 공간

  • 현대 한옥에서는 행랑채가 거의 사라지고, 대신 대문 옆에 별도의 출입 공간을 두는 형태로 변화.
  • 일부 전통 한옥에서는 여전히 행랑채 구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용도는 바뀌어 있음.

5. 결론: 행랑채는 조선 시대 신분제의 축소판이었다

  • 행랑채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조선의 계급 질서를 반영한 공간이었다.
  • 노비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며 집안일을 담당했으며, 사랑채와 안채와 철저히 분리됨으로써 양반과 천민의 신분 차이를 더욱 강조했다.
  • 행랑채는 외부 손님을 맞이하고, 집을 경비하고, 가사 노동을 수행하는 다기능 공간으로서 조선 시대 한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신분제가 폐지된 후 행랑채의 기능은 변화했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전통 한옥에서 발견할 수 있다.